예를 들어 그가 블랙스테이블에서 그토록 긴 사색 끝에 얻은 조그만 철학도 막상 밀드레드가 나타나 그녀에세 미쳐 있을 때에는 아무런 도움도 돼주지 못했던 것이다. 인생의 참된 지침으로서 이성이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인생은 어디까지나 인생이었다. 그 무렵 그는 이제 그의 전신을 지배하던 그 감정의 난폭함, 마치 밧줄로 대지에 묶이기라도 한 듯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던 그 무력함, 그러한 경험들을 생생하게 회상하고 있었다. 현명한 기혜는 얼마든지 책에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판단의 근거가 된 것은 그 자신의 직접적 경험 뿐이었다. 혹시 자기만이 특별한가, 그것까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그것을 하면 어떤 이득이 생기고 하지 않으면 어떤 손해가 있는지 그런 계산은 전혀 하지 않았다. 다만 전존재(全存在)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솟아 있을 뿐이었다. 결코 자신의 일부분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전존재가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지배하고 있던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성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이성이 한 역할이라고는 다만 그의 온몸과 마음이 욕구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손에 넣는가 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을 뿐이었다. 마칼리스터는 말을 끄집어냈다.
/그건 너의 일체의 행위가 만인의 행위에 대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하라, 그런것이지./
/그런데, 그게 나한텐 완전한 넌센스로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무척 대담한 친군데. 적어도 임마누엘 칸트의 말에 그런 식의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다시 존경한다는 것은 더 바보같은 얘기가 아닙니까. 어처구니 없게도 존경이 너무 지나칩니다. 칸트의 사상은 그것이 진리이니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그가 칸트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과연, 그렇다면 지상명령에 대한 자네의 이견이란 대체 어떤 것인가?/
(그의 기세로는 제국의 운명이라도 걸려 있는 듯한 말투였다.)
/즉, 이런 얘기겠죠. 사람은 누구나 의지의 힘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성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난내자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성의 명령이 어째서 정념의 명령보다 위라고 단정할 수 있죠? 두개는 각각 다른 겁니다. 내 얘리는 이것뿐이에요./
/어쩐지 자네는 정념의 노예로 만족하고 있는 것 같구먼./
/노예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것은 도저히 어쩔 수 없기 때문이지 결코 만족해서가 아닙니다./
필립은 웃었지만, 말하면서 문득 밀드레드를 따라 헤맬 때의 그 미친듯한 감정을 되새겨 보았다. 그때 그는 그것에 대해 얼마나 세차게 반항했던가, 또 자리의 비열함을 얼마나 통탄했던가.
(그러나 고맙게도 그런것은 완전히 잃어버렸다.)그는 혼자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과연 지금 한 말에 거짓이 없었는가 하는 점에는 그는 자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감정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그는 이상할 정도로 활기에 차 있었고 그의 정신은 놀랄 만큼 당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훨씬 발랄했고, 다만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느꼈고, 왕성한 영혼의 연소가 있었다. 그것과 비교해보면 지금의 생활은 어딘가 약간 저조한 데가 있었다. 비록 비참한 고통을 맛보았다 할지라도 그 대신 압도당할 만큼 강렬한 생명감이라는 보상이 있었다.
그러나 필립의 이 실언은 마침내 자유의지론으로까지 발전했고 학식이 풍부한 마칼리스터는 변증법에는 꽤 조예가 깊은 듯 계속 반론을 폈다. 필립은 어느덧 자기 모순이라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빠져나갈 수 없는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자 그는 교묘한 논리로 발을 빼고 다음엔 권위로 쳐 부셨다.
/난 다른사람에 대새건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 자신의 경험으로는 나 역시 자유의지의 미망은 몹시 강해서 그것으로부터 쉽게 도망칠 수가 없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미망에 지나지 않는 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자유의지의 미망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사실상 행동의 가장 강한 동기가 돼주더군요. 일체의 가장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는 무엇을 할 때까지는 내게도 선택능력이란 것이 있어보이고, 사실 내 행동을 좌주하다시피 하지요. 그러나 끝난 뒤에 생각해보면, 그것은 영겁의 엣날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 같은 느끼미 들어요./
/그러니 결론은?/
/말하자면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뿐입니다. 밀크를 쏟아 버리고 울어 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말은, 우주의 모든 힘이란 힘이 모두 달려들어 밀크를 쏟아 버리게 한 것나 마찬가지라는 얘깁니다./
-모옴 인간의 굴레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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